https://youtu.be/m9X6gnZFXXQ?si=aJiozr7Q6aKWgAYy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진정한 제자일까요? 팬은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따르지만, 결정적인 순간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종교 소비자에 머뭅니다. 반면 제자는 자신의 삶 전체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따르는 완전한 헌신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표적을 직접 목격한 열성팬 제자들은 예수님의 팬심이 절정에 달했지만, 정작 예수님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을 하시자 그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나는 지금 예수님을 정말 따르고 있는 제자인가, 아니면 내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열성팬인가?"라는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납니다.
60절에서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데, 여기서 '어렵다'로 번역된 헬라어 '스클레로스(σκληρός)'의 본뜻은 '이해하기 어렵다'가 아니라 '거칠다, 불쾌하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는 지성과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중심이 되고 싶은 마음,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구,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은 태도를 직접 건드리기 때문에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싫은 것입니다. 팬은 예수님이 자신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을 때 주저 없이 떠나지만, 제자는 말씀이 불편하고 이해되지 않을 때도 그 자리에 남아 주님께 묻습니다.
둘째, 팬은 떠나도 제자는 남습니다.
66절은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남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시는데, 헬라어 원문의 '메(μή)'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결단을 요구하는 도전적인 물음입니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고백하는데, 이것은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외에는 갈 데가 없기 때문에 남겠다는 고백입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팬처럼 예수님의 기능이 아닌 예수님의 본질 앞에 무릎을 꿇는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셋째, 마귀는 끝까지 제자인 척 하지만 예수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말씀하시며 가룟 유다를 가리키셨는데, 이는 외적 소속이나 사역의 열심이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가룟 유다는 3년간 예수님과 함께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전도 사역에도 참여한 헌신적인 제자처럼 보였지만, 그는 예수님을 자신이 원하는 맞춤형 메시아로 만들려다 실패하자 결국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미리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를 내쫓지 않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올 기회를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앞에 세 부류의 사람을 보여줍니다. 말씀이 불편해 떠난 열성팬,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고백하며 남은 제자, 그리고 자리를 지키면서도 결국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입니다. 불편한 말씀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삶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변화되는 삶,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결단입니다.
여러분이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것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열정이 식어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무엇이 그 마음을 변하게 했나요?
말씀이 불편할 때 —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요 6:60)
남는 자의 고백 — 제자는 왜 떠나지 않는가 (요 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