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nIeuBGaJ6A?si=uv4L-cqW1E7L4qyB
우리는 인생에서 폭풍을 만납니다. 우리는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우리의 나약함과 한계를 깨닫듯, 삶 속에서도 갑작스러운 질병, 깨진 관계, 경제적 어려움,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폭풍의 순간, 우리는 얼어붙고 혼란스러워지며 결국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라는 절규를 내뱉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배를 탔는데도 폭풍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순종의 길을 걸어가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우리는 폭풍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폭풍은 하나님의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 죄로 타락한 세상 속의 보편적 현실이며 때로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허락되는 과정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모든 인생은 폭풍을 만납니다.
제자들이 9시간 가까이 폭풍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예수님은 산 위에서 기도하시며 그 모든 장면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은 예수님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찾아오셨다고 기록하며, 이것은 주님의 시선이 한 번도 제자들을 떠난 적이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어둠과 폭풍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을 결코 막지 못합니다. 폭풍은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집중해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일하고 계신 자리입니다.
둘째, 폭풍 속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우리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정작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불과 9시간 전에 목격하고도 폭풍 앞에서는 여전히 주님의 능력을 제한했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시면 침묵하고 부재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ί) —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선언하시며 폭풍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직접 우리를 찾아오셨음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한계 안에 가두지 말고, 폭풍이 아닌 폭풍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곧바로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기쁨으로 배에 모셔 들이자, 배는 즉시(εὐθέως)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요한은 이 장면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 자체가 바로 구원임을 선포합니다. 두려움에서 기쁨으로의 전환은 폭풍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오셨음을 알아봤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17세기 새뮤얼 러더퍼드 목사가 유배 속에서도 "그리스도가 함께 하신다면, 감옥도 왕궁이 됩니다"라고 고백했듯, 폭풍의 한가운데서도 주님의 임재가 가장 깊은 기쁨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폭풍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어두운 십자가의 폭풍 속으로 직접 들어오셔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폭풍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살면서 자연의 위력 앞에서, 혹은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가볍게 나눠보세요.
나는 지금 어떤 폭풍 속에 있는가 (요 6:16–18)
주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요 6: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