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LZgoTxKQbM?si=z_YD9NV6D4Nmu2q0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메시아의 오심을 환호했던 날을 기념합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유월절에 성인 남성만 약 270만 명이 참여했을 만큼 그 규모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 소식을 듣고, 드디어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메시아가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 열광적인 환호는 단 5일 만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함성으로 뒤바뀝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왕으로 오셨습니까?”
첫째, 우리는 왕을 원하지 않습니다.
군중들은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신들을 다스리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정치적 해방을 가져다줄 왕, 곧 자신들의 기대와 뜻을 이루어 줄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는 고백 자체는 신학적으로 정확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기대는 완전히 다른 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님이 나를 섬겨주기를, 나의 계획을 실행해 주고 형통하게 만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둘째, 예수님도 왕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리십니다.
군중의 함성이 절정에 달하는 그 순간, 예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십니다. 멋진 군마 대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성취하신 계획된 행동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말은 전쟁과 정복의 상징이었고,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이 원하던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근본적인 해방을 가져오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말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당신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계신다면, 어쩌면 주님이 어린 나귀를 탄 왕으로 오고 계신 것은 아닐지 물어야 합니다.
셋째, 거절당한 왕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사라졌고, 종려나무 가지는 땅에 떨어졌지만,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군중의 환호도, 종교 지도자들의 인정도, 제자들의 이해도 없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목적을 흔들림 없이 이루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절망하며 내뱉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는 말은, 자신들도 모르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실망시켰을 때도,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을 때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이 종려주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유일한 왕으로 온전히 모시기를 소망합니다.
살면서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오히려 더 좋았던 경험이 있나요?
군중의 기대 — 우리가 원하는 왕의 모습 (요 12:12–13)
나귀를 탄 왕 —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리시는 예수님 (요 12: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