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밤잠을 설치곤 합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했던 기나라 사람의 이야기는 우스워 보이지만, 시험과 진로, 건강 앞에서 염려하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걱정은 기우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병과 이별과 실패는 실제로 찾아옵니다. 인지심리학은 불안의 원인을 불확실성과 통제력의 상실에서 찾지만, 성경은 그 뿌리를 죄, 하나님에 대한 불신, 인간의 연약함이라는 세 가지로 짚어 줍니다. 유월절 전날 밤 제자들도 스승의 떠나심과 배신과 부인의 예고 앞에서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두려움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약속하시며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을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피해 숨었듯,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 속에 가둡니다. 세상은 상황에 매인 평안이나 문제를 외면해서 얻는 평안을 말하지만, 이는 불안의 뿌리를 건드리지 못하는 거짓 평안일 뿐입니다. 우리 역시 바쁨과 변명과 비교, 심지어 교회 생활과 봉사 속으로 숨으며, 그런 우리를 참소하는 자인 세상 임금 사탄이 끊임없이 고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고발당할 죄가 없으셨음에도 십자가를 향해 일어서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사탄이 고발할 근거를 없애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책감이 올라올 때 숨지 않고 십자가로 나아가며, 갚으려는 신앙을 내려놓고 용서받은 자의 감사로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근심이 없는 평안이 아니라, 죄가 해결되어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되는 용서받은 자녀의 평안입니다.
둘째, 크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죄가 해결되었는데도 불안한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여전히 내 삶의 주인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큰 통제력을 쥐여 주시는 대신 시선을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려 주십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떠나심은 통제 불능의 상황이 아니라 크신 아버지의 주권과 섭리 안에 있는 길이었고, 부활은 병과 사별의 날에도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보장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모르는 앞날을 이미 아시는 아버지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믿음 위에 서게 하십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문제가 커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작아 보이기 때문이며, 평안은 문제가 작아질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쥐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맡기고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과 약속을 의지하며 쥐고 있던 손을 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우리 대신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겠다고 결심하고도 우리는 다시 손을 뻗어 붙잡고, 순종을 다짐하고도 어느새 내 방식대로 걷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그 연약함을 아시고 제자들이 흔들릴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으며, 믿음이 온전해야 평안을 얻는다고 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자라도록 이끄셨습니다. 죄가 불순종으로 들어왔기에,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시며 십자가까지 온전히 순종하셨고 그 순종이 믿는 우리의 순종으로 여겨졌습니다.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 아이의 실력이 아니라 안장을 잡아 주는 아버지이듯,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순종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흔들릴 때 자책하기보다 다시 예수님의 순종으로 돌아가고, 이미 받은 평안에 대한 감사로 작은 순종을 이어 가야 합니다.
요즘 여러분이 작은 일에도 마음이 쓰이거나 걱정이 많아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험이나 일, 인간관계, 미래에 대한 고민 등 편안하게 한 가지씩 나누어 봅시다.
숨지 말고 나아가라: 죄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4:27, 30)
쥐고 있던 손을 펴라: 나보다 크신 아버지 (요한복음 14: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