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3eDC1aKg4EA?si=SK1aMZ6t8Md7VUV_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에 도착했고, 한낮 정오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십니다. 그 누구도 물을 길러 오지 않을 뜨거운 시간에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자리에 오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질투와 갈등을 피해 갈릴리로 향하시며, 당시 유대인들이 혐오하여 피하던 사마리아를 '반드시(에데이)' 통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곳에 예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 남성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에게 종교적으로는 이단, 역사적으로는 원수였고, 특히 사마리아 여자는 항상 부정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인종, 문화, 성별, 도덕적 판단, 종교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 여인에게 말을 건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자리, 남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수치심, 외로움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문제는 목마름 그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우물에서 해답을 찾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남편'이라는 우물을 의지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큰 갈증과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리 역시 성공, 관계, 인정 등 세상의 우물에서 일시적인 위로를 구하지만, 예수님 외에 그 무엇도 우리 영혼에 참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 인정, 의미 있는 삶에 목마르며, 이러한 목마름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목마름을 잘못된 우물에서 채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남편'이라는 우물을 의지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큰 갈증과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리 역시 성공, 관계, 인정 등 세상의 우물에서 일시적인 위로를 구하지만, 예수님 외에 그 무엇도 우리 영혼에 참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짜 갈망해야 할 것은 "문제 없는 인생"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줄 영원한 생명의 근원, 바로 예수님입니다.
진실을 마주해야 목마름이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시며, 사마리아 여인이 가장 숨기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녀를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숨겨진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더 곪고 썩지만, 진실을 마주하는 그 아픈 과정이 있어야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마름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외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가 되어주셨습니다.
요즘 “솔직히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그곳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사마리아를 반드시 통과하셔야 했던 이유 (요 4:4, 9)
우리가 계속 목마른 이유 (요 4:13–15)